[ 혁신전문기업통신 (나도성의 일요편지) 263(2016. 6. 5) ]

 

혁신전문기업실용학회 회원여러분,

 

지난 한주도 건강하게 잘 보내셨습니까. 미세먼지로 인해 잔인한 5월이 되었는데 우리 정부가 미세먼지대책으로 내놓은 정책들을 보니 과거 애기했던 것들을 재탕삼탕한 것이 대부분이고 핵심적인 내용은 서민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빠지거나 중장기적 검토대상으로 옮겨갔습니다. 과연 우리 한반도가 처한 오늘의 상황이 이 수준의 대책으로 얼렁뚱땅 넘어가야 할 사안인지 아쉽습니다. 국가건 개인이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우선순위에 따라 대응을 해 나가는지가 그들의 미래의 성패를 좌우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습니다.

 

요즈음 논란거리의 하나로 회자되는 것은 가수 조영남씨가 다른 사람이 대신 그린 그림을 자신의 이름으로 팔았다는 것입니다. 검찰에서 조사까지 받았고 아무래도 법정다툼으로까지 나갈 것 같습니다. 조영남씨는 조수가 대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미술계의 관행이다.”라고 주장해서 더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조영남씨의 대작 판매 건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 의견이 많고 마녀사냥을 하는 경향까지 보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융합창조사회의 큰 흐름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할 것입니다.

 

이 관련하여 한국대학들이 학과작명소로 전락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에서의 비판 평론도 있습니다. 에너지그리드학과, 스마트운행체공학과,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휴먼바이오공학부....등을 열거하면서 정부의 프라임사업(산업연계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이후 이러한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정부가 프라임사업 평가시 융복합창조역량을 강조하면서 대학들이 융합창조학과를 설치하면 우대하게되어서 대학들이 정부 프로젝트에 선정되기 위해 앞 다투어 난수표같은 학과를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일견 일리가 있으나 이 비판 또한 융합창조사회의 큰 흐름에 역행하는 근시안적 사고의 결과입니다.

 

저는 지난주에 중국 북경에서 개최된 국제 교육 창신발전 전문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중국이 추진 중인 일대일로프로젝트의 하나로서 민간기업 주도로 중국 대만 러시아 유럽 중앙아시아 한국 등 70여개 대학과 40여개 기업이 참여하여 교육의 창조적 발전을 위한 융복합 협력전략을 발표하고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34일 동안 참여 대학 모두가 자신 대학의 특장점과 진행중인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전문가 토론과 함께 협력 활동을 열심히 벌였습니다. 교육의 글로벌 융합창조발전 전략을 민간과 대학이 융복합하여 실천적으로 진행시키고 있었습니다.

 

조영남씨 대작 판매건과 대학들의 학과작명소 현상 등에 대한 한국내에서의 비판적 시각에 접하면서 저는 중국에서의 일대일로정책의 일환으로 민간이 주도하여 진행 중인 교육의 글로벌 융합 창발에 앞장서는 모습과 크게 대비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과연 한국과 중국 어느 쪽이 미래의 승자로 나아가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요.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융합창조를 위해 정책적 역량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재벌기업들을 끌어들여 전국 방방곡곡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정작 융합창조를 통해 국민경제 전반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해 내고 있다는 결정적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영남 대작 판매건이나 학과작명소라는 비판적 의견만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한국 사회의 근저에는 무슨 문제가 내재해 있어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우리 국민 모두가 융합창조라는 원론적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각론 실천으로 들어가게 되면 기득권의 입장에서의 반대로 돌아선다는 것입니다. 정부도 융합창조경제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창조경제센터와 같은 외형적 모습을 갖추는데는 재빠르지만 그 구체적 실현과 실천을 위한 솔류션을 마련하는데는 미지근하고 미흡하며 하물며 만들어진 솔류션이 있어서 그 작동과정에서 반대가 심하다는 것입니다.

 

융합창조의 실천적 입장에서 보면 유명가수 조영남이 무명 미술가와 융합해서 시장에서 평가받는 융합미술품을 창출해 낸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까요. 무명 미술가가 아무리 노력해도 시장에서 평가받기 어려울 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바로 이종과의 융합입니다. 음악이든 그 무엇이든 브랜드 활용이 가능하면 그 브랜드와 융합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영남의 브랜드와 음악적 통찰이 미술품에도 융합되어 활용된다면 그 미술품은 날개를 달지 않겠습니까. 기존의 통념으로 판단하고 기득권 보장에 주안을 두는 법적, 제도적 눈으로만 보면 융합창조력은 발휘되기 어렵습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융합창조전략과 조영남의 미술품 대작 융합창조전략에는 과연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다시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요즈음 대학의 모습을 학과작명소라고 했습니다. 대학이 학과작명소가 되어서 그 콘텐츠를 잘 채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기존의 전통적 학과를 그대로 두면 과연 이들 기득권자들이 새로운 컨텐츠를 구시대 그릇에다 담아 낼 수 있을까요. 학과작명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작명된 학과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실천적 솔류션을 내실화해 나가도록 독려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항상 자신들의 외눈박이 눈으로 세상의 큰 흐름을 재단하려 합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까막눈부터 교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연계하여 중국의 민간 기업들은 스스로 앞장서서 대학의 비즈니스모델 혁신을 추동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한국의 기업들이 능동적으로 벤치마킹해야 할 사례라 할 것입니다.

 

혁신전문기업실용학회 회원여러분,

 

오늘은 우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융합창조에 대한 원론적 찬성과 각론에서의 반대현상에 대해서 거꾸로 보는 눈으로 검토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기업 활동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여러분 오늘도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 6. 5. 나 도성 배